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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수 김동률의 노래를 좋아한다.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감미로운 멜로디 때문에 그의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감하는 가사말 때문이다. 최근 그의 앨범 <Monologue>중 네 번째 곡인 ‘Jump'를 들으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. 밝고 경쾌한 리듬에도 불구하고 노래 가사가 서른을 벌써 넘긴 지금의 나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기에...


‘Jump'가사의 일부분이다. 아직 모든 게 신기한 / 내 스무 살 때처럼 / 새로운 내일에 설레하며 / 가슴이 뛰고 싶어 / 이제는 나를 깨우고 싶어 / 또 다른 나를 찾고 싶어 / 어디서부터 무엇부턴진 몰라도 / 한 번 달려가 볼까 / 덜컥 저지르는 용기와 / 두둑한 배짱을 갖고서 / 열정에 가득 차 나를 불사를 / 그 무언가가 필요해 /


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그 오묘한 느낌을 나는 최근에 또 한 번 느낄 기회가 있었다. 바로 오쿠다 히데오의 <스무살, 도쿄>를 읽으면서이다. 저자만의 독특한 해학이 넘쳐나는 재밌는 문체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이십대가 아닌 나의 마음 한구석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청춘소설 <스무살, 도쿄>. 주인공 다무라에 겹쳐지는 나의 이십대를 되돌아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삼십대인 현재의 나를 동정하고 있었다.


다무라 히데오는 18살에 재수공부를 핑계로 도쿄로 상경한다. 음악평론가가 되길 바라던 그는 단지 여자를 많이 만날 수 있을거라는 이유 하나로 국문과에 입학, 동기생과 풋풋한 첫사랑을 한다. 이후 집안사정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작은 광고회사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워나간다. 경기가 좋아 친구들 몇 명과 독립하여 자신의 사무실을 갖고 있고 좋은 여자친구도 있는 상태로 이십대의 마지막을 보낸다.


책은 다무라의 이십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시대의 역사적인 사건, 예를 들면 존 레논의 사망, 88올림픽 선정결과, 일본 유명인들의 중요 사건 등을 함께 보여준다. 이는 마치 한 개인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는 맞물려 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. 우리 각자는 세상에 홀로 인 것 같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.


나의 실제 이십대도 다무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. 한 개의 여고에 5개 반이 있던 작은 시골 도시에서 대학교 입학을 계기로 서울로 유학와서 이십대를 시작했다. 겨우 몸만 뉘일 수 있는 작은 방에 하숙을 하면서 학교 선배와 첫사랑을 했고 무난하게 졸업을 했다. 전공과 관련 있다 싶어 들어간 회사는 결코 그렇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울생활을 하기 위해 생각하기를 포기한 채 직장생활을 했다. 그 사이 몇몇 남자를 만나 시시한 연애를 했고 특별할 것 없는 삼십대를 맞았다.


다만 내가 다무라와 다른 건 호경기 시대가 아닌 불경기 시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나는 여전히 넉넉지 않은 월급을 받아 급급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. 그리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. 무엇보다 삼십대를 벌써 세 해나 맞고 있으면서도 이십대를 그리워하며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 다무라와는 다른 점이다.


이런 상태의 내가 이 책을 읽었으니 왜 울고 싶지 않았겠는가. 지나간 이십대가 그리워서 울고 싶었고 초라하기만 한 삼십대가 속상해서 울고 싶었다. 방황만 하던 이십대의 나에게 미안해서 울고 싶었고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삼십대의 나에게 죄스러워 울고 싶었다. 이런저런 이유로 이 책은 내가 울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.


차라리 속시원하게 울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나 자신한테 보이는 눈물도 부끄러워 울 수가 없다. 아직도 우는 것으로 스스로를 연민하는 내가 더더욱 싫어질 것만 같아 울 수가 없다. 왜 나는 다무라처럼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걸까. 나에게는 정말로 세상의 어려움들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모두 사라진 걸까.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는 영영 자취를 감춘 것일까.


<스무살, 도쿄>를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졌다. 그저 이웃 나라의 유머러스한 작가가 재미로 썼다고 생각하기에는 나에게 많은 물음을 던져준 이 청춘소설을 내 삶의 터닝포인트로 삼겠다고 하면 좀 오버일려나. 하지만 어쨌든 이 소설때문에 나는 이십대 같은 마음으로 삼십대를 살아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으니 나에겐 충분히 ‘바이블’과도 같은 의미의 책이 될 수 있으리라. 





Posted by 설해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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